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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有朋이 自遠方來하니 不亦樂乎아"

멀리서 친구가 찾아오니 아니 기쁠 소냐. 당근 기쁘지!

 

‘괴물눈 감시자’, ‘바실리스크’ 를 잡으며 황무지 생활을 한 지 어언 몇 일이던가.

사실 조금 무서운 곳이긴 하지. 엠탐하다 죽기를 서너 번. 한번 죽을 때 마다 ‘SP 모았다 -_-ㆀ’ 하며 씁쓸한 웃음을 지어보지만, 리즈님, 너무 자주 눕다 보니 SP를 모은다는 것도 의미가 없어 보인다.

 

삭막한 황무지의 모래 바람을 가르며 오늘도 정진한다.

 

“(나) 리즈님, 저기 아치 문에 잠시 다녀올게.”

 

“(리즈님) 혼자 가겠다는거냐?”

 

“(나) 아니, 그게……리즈님 번거로울까 봐.”

 

“(리즈님) 이 위험한 곳에서 어찌 너만 혼자 보내누, 내가 함께 가마.”

 

누가 누구를 보호하는 건지, 가끔은 알 수가 없다.

혹시 리즈님은 이 몹 소굴에 혼자 남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닐까?

이만하면 몹과 눕는 것에 대해서 좀 여유로워 질 때도 됐는데.

 

그래서 함께 간 곳, 황무지 남쪽 입구에 위치한 아치.

 

저 멀리 많이 보던 모습이 눈에 띈다. 아…… 그리운 친구들.

 

“(나) 리즈님, 내가 아는 비숍과 스펠하울러야.”

 

“(리즈님) 친구도 있었누? 맨날 궁상 떨고 있길래 따~ 인줄 알았다. ”

 

“(나) 헉스 -_-ㆀ, 리즈님 너무해.”

 

그런 말을 굳이 해야하나?

 

내가 밤 마다 이러구 앉아서 궁상 떨고 있는게 다 누구때문인데.

콧대 높은 네 넘을 모시느라 이러구 있는줄은 꿈에도 모르겠지.

 

그래도 리즈님 소문을 어찌듣고 한번 인사한다고 찾아온 내 친구들인데, 내 기를 그토록 죽여서 좋을 게 뭐람. 확 돌려보낼까 보다. 뭐 내가 오라고 한 것이 아니므로 가라고 할 건덕지도 없겠지만.

 

흠, 그래도 억장을 다스리며, 온화한 목소리로.

 

“(나) 여긴 힐의 여왕 아기고 이 친구는 검은 마법의 대부 암흑이야.”

 

“(나) 그리고 여긴 리즈님.”

 

“(리즈님) 이 먼 곳까지 방문해 주어서 고맙소.”

 

황무지가 멀면 얼매나 멀다고,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저 깍듯한 멘트 하고는 ㅡㅡ^

평소에 나한테 반틈만치나 잘 해주지... 아주 머리 위에 이고 살 텐데.

리즈님 이럴 때는 예의 짱이다.

 

“(아기) 우와 소문대로 잘 생기셨네.”

 

“(암흑) 리즈님이 분투하신다는 소식을 듣고 선물을 준비해 왔습니다.”

 

나에게 쿠사리를 줄 때와는 영 딴판. 아무래도 이중 인격자거나 아니면 진짜로 예의가 몸에 배어 있거나. 물론 예의가 바른 것과 재수 없음은 별개의 인자라 공존이 가능하다는 게 좀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

 

이쁜 넘들. 리즈님을 위한 전직 선물로 마정탄과 축마탄도 준비해오다니 인사성 엄청 밝다. 게다가 리즈님을 위해 이벤트도 마련했단다. 이름하여 암흑이의 몰이와 아기의 몸빵. 들어 봤나? 비숍이 몸빵을 한다는 것을.

 

리즈님 속삭이듯 내게 묻는다.

 

“(리즈님) 그런데 ‘몸빵’이 뭐누?”

 

“(나) 몸빵? 크크 그냥 온몸으로 막아내는 거.”

 

파티 경험이 없는 리즈님 몸빵을 알 리가 있나. 그래도 아마 금새 뭔지 알아차리셨을 걸. 순식간에 몹을 몰아오고 아기는 힐을 팍팍 날리며 몸으로 막고, 리즈님은 저 높은 바위 위에 앉아 있다가 잠시 일어나 불 방망이질을 했다.

 

아마 리즈님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정신이 없어 보이지만 체면이 있는지라 표를 내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내 눈은 못 속인다. 침착 하려고 애쓰는 저 모습. 리즈님은 숨을 가다듬을 때는 습관적으로 머리칼을 한 번 더 쓸어 올린다.

 

“(암흑) 리즈님 혹시 범위를 대상으로 한 마공에 대해서는 연구를 마치셨나요?”

 

“(리즈님) 내 아직 연구가 부족해서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다오.”

 

“(암흑) 연마하신 다면 다음에는 더 좋은 곳으로 안내를 해 드리고 싶습니다.”

 

“(리즈님) 역시 앞선 길을 걷는 자네를 만나니 얘기가 통하는군. 내 꼭 연마하리다.”

 

뭐, 마공 연구는 뭐며, 얘기가 통하는 건 또 뭐야.

그럼 나와는 얘기가 잘 안 통한다는 거야 뭐야? 위저끼리는 통하는 뭔가가 있단 말야?

쩝 속에 들어앉아 본 것도 아닌데 저 넘의 귀족 넘 속을 내가 어찌 알겠누.

 

항상 묵묵하던 리즈님, 사냥터 얘기며, 그간의 얘기를 잘도 풀어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정말 오랜만에 말할만한 상대가 나타난 것인지도. 내가 낄 틈이 없구먼.

 

오랜만에 몰이도 하고, 바깥 세상의 얘기도 듣고, 리즈님의 모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즐거운 시간이었다. 리즈님도 썩 나빠하지 않는 듯 했다. 아마도 이런 정도라면 얼마든지 파티에 어울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희망도 볼 수 있었다.

 

그들이 떠나가고.

 

“(리즈님) 좋은 친구들을 두었구나.”

 

“(나) 멋진 친구들이야.”

 

“(리즈님) 넌 무얼 했었누, 그 친구들이 너의 얘기를 하더구나. 무섭게 질주하는 뭐... 라던데.”

 

“(나) 하길 뭘, 그냥 지나간 옛 일이야. 떠나온 저 세계의 얘기고..."

 

“(나) 그건 그렇고, 리즈님 아까 멋지던 걸.”

 

“(리즈님) 하하, 그렇더냐?”

 

리즈님은 내가 피하는 것을 느꼈는지 더 물어보지 않고, 웃음을 짓는다.

밝은 모습. 고독함을 사랑하는 줄 알았는데, 오늘 보니 꼭 그렇지 만도 않은 것 같다.

 

“(리즈님) 뭐 그리 넋을 놓고 있누, 가자구나.”

 

“(나) 응, 리즈님.”

 

다시 리즈님과 함께 떠나는 길.

 

잠시 동안은 황무지를 벗어나 바닷가 구경을 하며 유람이라도 해야겠다.

아마 지금쯤 황무지의 바실리스크들은 모두 몸살이 났을 거다.

 

무.섭.게.질.주.하.는.

 

무섭게 나아간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던 적이 있었다.

새삼스레 옛 기억을 떠올려본다.

본성이란 건 쉽게 감출 수 있는 게 아닌가 보다.

 

잊은 줄 알았는데, 오래된 기억들이 튀어나온다.

오랜만에 들은 바깥 소식, 친구들, 사람들이 그리워진다.

 

그래도 지금은 내가 있는 이곳, 이곳에 충실해야지.

잊기로 한 것은 잊는 것이지...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1.23.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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