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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리즈님 만나기 5분전.

 

리즈님과 헤어지고 나면 바로 폭 쓰러져 잘수 있는 상태다.

접속하려는데 클라이언트가 실행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없었구먼 재 부팅까지 해가며 몇 번을 시도하여 겨우 접속했다.

 

리즈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사냥 갈 시간인데, 늦었구나. 다음부터는 지각하지 말아라. 나 기다리는 거 싫다.”

 

쵓, 언제 시간 약속을 한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보수를 받고 모시는 것도 아니구먼 항상 반말에 상전 노릇을 하기는. 그렇지만 초장부터 심기를 거스르면 안될 것 같아 일단 비위 맞추기 모드로 가기로 했다.

 

리즈님 오늘은 한적한 곳을 예약하고 사냥을 하시겠다고 한다.

예약은 무슨 놈의 예약!

넘들이 와서 사냥하면 그만이지, 사냥하러 온 다른 사람들을 내 쫓을 수 있겠어.

아직 아덴 월드를 몰라도 너무 몰라.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는 곳에서 사냥을 해야 재미가 있는데.

위험할 때는 “ㅊㅊㅊㅊ”를 치며 도망가다가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 가끔 몹 스틸 시비가 일기도 하지만 그래도 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 좋다. 그래야 사람 사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런데 리즈님은 그게 아닌가 보다.

 

저리 고상한 양반이 그나마 칼 들고 거미를 잡는 것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갑자기 ‘지각을 했다’고 찍힌 터라 비위는 맞추어야 할 터, 말섬 서북쪽 해안가 거미 밭으로 안내를 했다.

 

“(나) 여기라면 다른 사람에게 방해 받지 않고, ‘거미타도후득도’ 가능한 곳이와.”

 

“(리즈님) 음, 경치 좋구나!”

 

리즈님 오늘은 별 말을 않고, 거미 잡기에 돌입하셨다.

거대 거미, 거대 송곳니 거미 모두 리즈님의 화려한 윈드에 힘을 잃고 스러져 버린다.

‘리즈님 나이스!’

 

윈드와 아이스 볼트에 넘 많은 기를 써 버려서 인지, 리즈님은 점점 피로해 지는 것 같다.

공격력을 강화할수록 뽀얀 낯 빛이 점점 어두워 진다. 위저의 길이란 쉽지 않은가 보다. 온몸의 힘과 기를 자아내어 주문을 외우고 가쁜 숨을 내쉰다. 저 체력으로 버틸 수 있으려나.

 

“(나) 리즈님 오늘 괜찮겠어?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리즈님) 수련의 길은 원래 힘든 법이다. 뭘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느냐.”

 

그러나 이미 얼굴은 사색이 되어있다.

 

품위 유지란 저런 것이구나. 힘들어도 힘들다 하지 않는다. 

 

“(나) 리즈님 우리도 전사 하나 데려다가 1:1 이란 걸 해보자. 힐 좀 해주면서 앉아만 있으면 되는데.”

 

“(리즈님) 내가 원래 마법을 배운 것은 남 싸움하는 거 지켜보고 앉아 있다가 힐이나 해 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나) -_-ㆀ”

 

자기 주장은 왜 이리 강한 거야. 그래도 위저 기질이 아주 조금은 보여서 다행이다.

 

지난번에 달랑 2개밖에 안 되는 마이트와 실드를 나누어 주며 좋아하는 듯 하길래, 내심 프로핏의 길로 가겠다고 우기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지금 보니 그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아무튼, 리즈님을 너무 혹사 시키면 안될 것 같은데.

 

아주 자연스럽게 전사를 만나게 하거나 파티와 어울리게 하여 리즈님의 수련도 돕고, 밝은 모습도 보았으면 좋겠다. 뭔가 좋은 방법이 필요하다. 오늘부터 머리 짜기에 돌입해야겠다. 이건 내가 근질거려서 견디기가 힘들다.

 

리즈님의 엠탐 시간이 점점 잦아진다.

한 없이 길고 지루하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오랜만에 자유 게시판에 들러 우리섭 소식을 읽어보았다.

한창 혈전 중이구나. 떠나온 저 세계가 잠시 궁금해진다.

 

혈 친구들은 다들 잘 있을까.

북적거리는 성 마을과 항상 사람으로 붐비는 용던,

미로 같은 오만의 탑까지 다들 잘 있을까,

우리의 여행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난 과연 리즈님을 모시고 용던까지 갈 수 있을까?

지금 보면 잊던에 가는 것 조차 쉬워 보이지 않는 고집 불통인데...

 

여러 가지 질문이 머리를 스친다.

이 와중에도 리즈님은 별 흔들림 없이 저 멀리 하늘만을 바라본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내 속으로는 짐작할 수가 없다. 지난 번엔 기분 탓에 리즈님이 좀 재수 없게 생겼다고 했는데, 오늘 찬찬히 다시 보니 그렇게 재수 없게 생긴 것 같지는 않다.

 

뭔가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고매한 숨결이 느껴지는 것 같다.

나, 리즈님한테 빠지고 있는 것 같다.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1.06.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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