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치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글루딘 마을.
잠시 동안의 공간 여행 탓인지 리즈님의 얼굴도 붉게 상기되어 있다.
위저드 전직이라, 18개 1차 전직 중에 가장 어려운 시험이라고 여기 저기 대단하게 겁을 주고 있다.
아는 친구 넘이라도 데려다가 같이 하라는 얘기뿐이지만, 존심 하나는 소심줄 같은 리즈님,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나 하련지 원.
리즈님의 선약 상대인 ‘패리나’를 찾아 마을을 잠시 돌아다녔다.
역시 본토는 다르다.
여기 저기 장사치의 외침도 들리고, 벗들을 찾는 외침도 있고, 스치는 인사도 있다.
장터의 흥겨운 음악까지.
아, 반갑다, 그리운 본토여!
패리나를 만나 우리의 여정에 대해서 들었다.
그녀는 조근조근 얘기를 풀어나갔다. 우리는 앞으로 불과 물, 바람, 대지의 정령을 만나 증표를 얻어와야 하며, 이 길은 연약한 법사 혼자서 가기에 쉽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나) 리즈님, 내가 아는 친구라도 부를까?”
“(리즈님) 내 앞에 놓인 시련이다. 누구의 도움을 받으면 그게 나의 도전이 될 수 있겠누. 나의 길이다.”
“(나) 알써. -_-ㆀ 지금부터는 맘이나 단단히 붙잡아 매라고.”
리즈님, 앞으로의 모험이 압박이라도 하는 듯 표정이 자못 심상치 않다.
“(리즈님) 불의 정령, 살러맨더에게 가자. 앞서거라.”
“(나) 쩝, 그렇지 뭐, 내가 앞서야지.”
맨날 고생은 내가 하는 거지 뭐.
나의 도움은 도움 같이 느껴지지도 않누?
이거 어디 보험이라도 들던지 해야지. 리즈님 뫼시다 골병들지도 모른다.
리즈님은 처음 보는 불꽃이 살러맨더 앞에서도 의연했으며, 그가 원하는 부탁을 점잖이 받아들였다. 우리는 완수해야 할 임무가 있는 여행자이긴 했지만 핀루크를 찾아가는 길 내내 본토의 광활함과 아름다움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었다.
‘문제가 생기면 그때부터 고민하자.’
리즈님과 내가 의견 일치를 본 부분이다. 오래 알고 볼일이야. 리즈님과 내가 통하는 것도 있다니. 뭔가 좀 부족한 것 같은 우리의 모험이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때 고민하기로 했다. 그리고 순간 순간을 그냥 즐기기로 했다. 이것도 우리의 여정의 한 조각 일진데.
리즈님은 핀루크와 멋지게 싸웠고, 그가 가져간 ‘불꽃의 열쇠’도 찾아내었다.
이렇게 황량한 곳도 있을까, 황무지를 헤매며 ‘바람의 실프’를 찾았고, 개미들과 해골병들과 바실리스크로 둘러싸인 진퇴양난의 기로에서는 귀환을 하고, 또 다시 ‘황무지 리자드맨’을 찾아가 시끄러우니 소음을 줄여줄 것을 당당히 요구했다.
내가 길을 잘못 인도하여 시뻘건 몹으로 가득 찬 무시무시한 그곳을 피해 다니면서도 리즈님은 물러서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다만 귀환할 뿐.
물의 정령인 운디네와 대지의 뱀을 만나는 과정까지도 리즈님은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었다. 오랜 여정과 이속 물약에 약물 중독이 될 지경이었지만, 피곤한 내색도 없이 계속하여 달려갔다.
아, 리즈님에게는 저런 열정이 있었구나. ‘초절정귀챠니스트’라고만 생각했는데, 말섬에서는 볼 수 없었던 리즈님의 모습이다.
리즈님은 불과 물, 바람과 대지의 정령들을 모두 만나고 그들이 원하는 요구를 들어준 대가로 증표를 모두 챙겼다. 항상 내게 명령만 하던 리즈님, 이번만큼은 본인이 척척 해 나갔다. 그리고, 증표를 모두 챙긴 리즈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패리나에게 달려간다. 진짜 리즈님 맞아?
패리나는 삼빡한 여인네다.
증표를 확인하더니 디리링, '전직 퀘스트를 잘 끝냈다'고 한 마디 하더니 안면을 싹 바꾼다.
용건이 끝났다는 거지.
리즈님 앞에서 비싸게 굴긴.
하여간 이제 내가 할 일은 리즈님의 신전 안으로 인도하여 전직을 돕고, 새로운 기술을 연마하게 돕는 것이지. 그리고, 귀여운 고양이나 한 마리 불러내어 놀고. 아, 이 긴 암흑의 날들을 귀여븐 고양이 한 마리로 날려버리리라.
대신관에게 갔던 리즈님은 별 탈 없이 ‘위저드’로 전직을 했고, 매지스터에게 가서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나) 리즈님, 고양이.”
“(나) 리즈님, 캣 더 캣을 불러줘~~~”
“(리즈님) …….”
나, 거의 울상 되었다. SP가 얼마 남지 않았거든.
“(나) 고양이, 고양이……. ㅠ.ㅠ”
“(리즈님) 먼저 할 것이 있고, 나중 할 것이 있는 법. 고양이는 나중에 만나거라.”
“(나) 그래도, 그래도 고양이 보고 싶었는데. ㅠ.ㅠ”
“(리즈님) 수고 많았다. 다음 번에 꼭 고양이를 안겨주마. 오늘은 피곤하구나 그만 쉬련다.”
귀여븐 고양이를 델고 다니고 팠는데, 오늘은 아무래도 힘들 것 같다. 그래도, 웬일로 다음 번을 기약해 주다니. 맨날 스킬도 찍으라는 것만 억지로 찍던 리즈님, 오늘은 내 의견도 묻지 않고 술술 해치워 버린다.
아, 리즈님 옆에서 점점 설 자리를 잃는 것 같다.
한때 프로핏이 되겠다고 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은 이번 전직 퀘스트를 통해 싹 날라갔다. 리즈님 심연에는 강한 위저 기질이 꿈틀대고 있는 것처럼 보였거든.
“(나) 리즈니~임…….”
“(리즈님) 왜 그러누?”
“(나) 다 끝났으니까 묻는 건데, 아까 왜 배 안 탄다고 했어?”
“(리즈님) …….”
“(나) 왜 안 탄다고 했냐고~”
길게, 아주 길게 한 백만년쯤 뜸을 들인 후에야 그 답을 들을 수 있었다.
“(리즈님) 배 멀미 있다.”
“(나) 컹, -_-ㆀ”
뭔가 근사한 이유 내지는 비밀이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리즈님 다운 대답이다.
이제부터는 리즈님의 위저드 라이프다!
......
난, 말섬을 모른다.
우울한 기분에 어쩌다 떠밀려 들어서게 된 그곳.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리즈님.
이래 저래 꽤나 까탈스런 귀족 넘과 이렇게 모험을 하게 될 지도 잘 몰랐다.
말섬의 아름다움, 불쑥 나타나는 제조와 카오들, 친절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만날 생각이 털끝만치도 없어 보이는 리즈님의 고독함.
이제 대륙으로 왔고, 많은 것이 변해 있지만 리즈님의 고독함은 앞으로도 계속될 지 모른다.
이 속에서 리즈님은 어떠한 생각을 할 지,
'나'는 또 무엇을 찾게 될지,
그리고 또 얼마나 많은 싸움을 하게 될 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의 모험은 계속될 것이다.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1.18.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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