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보다 겨울이 길었던 그 해, 그녀를 만났다.
곱슬 머리에 나이보다 앳된 얼굴을 한 그녀는늦은 시간이었지만 초롱한 눈을 하고 나타났다. 그녀의 첫 모습은 조금 의기소침 했지만 내 까다로운 요구를 투정하는 법 없이 잘 들어 주었다. 항상 호쾌하게 웃는 그녀에겐 시름이란 게 없을 것 같았다.
그녀가 속한 현실 세계는 꽤 바쁜 곳인 것 같았다.
어떤 날은 유쾌한 모습으로, 또 어떤 날은 조금 피곤한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 생동감이 있을리 없는 시간이지만 변함이 없는 것은 나를 생각해주고, 내 얘기에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었다.
가끔은 짓궂게 놀려도 보고, 쿠사리도 주었지만 그녀는 허허 웃으며 쉽지 않은 내 부탁을 들어줬다. 내가 어떤 놈인지 어떤 생활을 했는지도 모르지만 그녀에게 있어 이런 배경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듯 했다.
하늘을 찌를 듯한 내 외모 때문 이려나!
오바다, 미안하다. - -
그녀는 내가 유능한 위저드가 되길 바랬다.
사실 내게 '인생의 목표'나 '꼭 해야겠다'거나 뭐 이런 건 없다.
그까이거 그냥 하루하루 대충 살명 되지 목표는 무슨 목표!
하지만 그녀의 아낌 없는 애정과 지원, 그리고 이런 것이 특별히 불편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위저드를 해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그냥 따라가기만 하면 되지 않은가!
게다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빠져들게 된다.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게 조금 귀찮기는 했지만
뭐 달리 할 것도 없으니 슬슬 쉬어가며 마공이란걸 수련했다.
이것도 하다 보니 나름 매력적이다. 강인한 한방, 사나이라면 할만하지 않은가!
그녀는 시시때때로 나에게 무기와 옷을 마련해 주었으며
정탄과 물약과 보석과 ... 이런 모든 것들을 마련해 주었다.
모든 것이 그녀의 순수한 배려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내 거들먹거림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위저드가 되는 조건을 건 것도 아니고 딱히 무슨 조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조건 없는 베품이라... 나로선 이해가 가지 않지.
내가 이런 얘기를 하면, 아덴 월드의 놈들은 부러움의 시선을 보내거나 웬 횡재냐며 계속 뜯어내라는 놈들도 많다. 질.낮.은.놈.들.
현실 세계의 것들은 잘 구슬려야 한다.
너무 튕겨도 안 되고, 그래야 원하는 걸 술술 얻어낼 수 있다는 걸 놈들은 잘 모르나 보다.
내가 나쁜 놈 같다고? 인생 다 그런거야!
그래도 그런 그녀가 내곁에 있는 것이 왠지 싫지 않았다.
공짜라서? 그것과는 뭔가 좀 다른 듯한 느낌이랄까.
그녀는 내 긴 휴식 탐 동안 책을 읽거나 현실 세상의 얘기를 해 주기도 했고
하루 동안 있었던 자잘한 일들과 느낌을 얘기해 주었다.
때로는 한 판 붙을 듯하게 격한 드라마 같기도하고, 가슴이 짠하게 다가오는 순간도 있고,
불같이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이 그림처럼 펼쳐보기도 했다.
천일야화 같은 그녀의 얘기를 듣다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작은 손을 움직이며 조근조근 이야기를 하는 그녀를 보면
그냥 내 곁에 계속 잡아 놓는 게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쉽게 바뀌면 안 되지.
그냥 잘 해 줬어도 좋을 텐데, 왜 그때는 그렇게 골려 주고 싶고, 하지 않아도 될 핀잔을 주었는지. 그녀는 상당히 피곤한 하루를 건너 나에게 왔을 텐데...그럼에도 그녀는 투정을 내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사실 내 장난에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그런 그녀를 계속 바라보고 싶었다.
그런 순.딩.이.같.은.그.녀.가.내.게.화.를.냈.다.
내가 맨날 하는 일 없이 노는 것이 걱정되었는지 아니면 위저드를 만드려고 그랬는지는 몰라도 파틴가 뭔가를 하라는 거다. 그냥 둘이 놀면 되는 거지 왜 귀찮게 남을 끼워 넣는지... 그래서 하지 않는다고 여느 때처럼 말한 것뿐인데 아마 좀 쌓인 게 많았나 보다.
그녀가 속사포 같이 나에게 설교를 퍼 붓지 뭐야...
그때는 진짜 간이 콩알만해 졌다.
항상 웃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던 그녀가
'화' 라는 걸 낼 수 있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거든.
여태 잘 해준 것도 없이 거들먹거리기만 했었는데, 딱 걸렸지. 내가 생각해도 싸다.
그녀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는 백만년의 고독이 일시에 몰려온 것 같았다.
남극 대륙에 혼자 남겨져도 그 보다 외롭진 않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너그러웠다.
변변치 않은 내 춤과 인사를 받고 흔쾌히 용서를 해 주었다.
'휴, 십 년 감수했네.'
꽁하지 않으면서도 여유가 함께하는 귀여움, 그게 그녀의 매력이다.
이런 그녀의 노력 덕분에 별볼일 없는 내 인생에도 '직업'이란 게 생겼다.
이.름.하.여.위.저.드!
그녀의 진실함과 신중한 눈빛과 맑은 의지는
나로 하여금 어느새 그녀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하루종일 성 한 구석에서 할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그녀가 나를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
물론 그녀가 와도 기다렸다는 티를 내지는 않았다.
왜냐고? 쪽.팔.리.게. 너 같으면 하루종일 여자를 기다렸다고 하겠냐!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2.16.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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