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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즈님을 보지 않은 채 몇 일을 보냈다.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나 없는 동안 리즈님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내가 떠나면 리즈님은 어떻게 지내게 될지… 행.복.하.겠.지.

마지막 인사를 하고 훌훌 털어내야 하나.

 

처음 리즈님을 만났을 때 난 심한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누군가를 잊기 위해 리즈님을 만났다고 해도 그리 이상할 게 없다.

잊는 다는 것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리즈님을 좋아해 보리라 생각했다.

그때는 그에게 이토록 빠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귀족 나으리 같이 항상 자신이 앞서는 리즈님이었지만

때로는 따뜻한 웃음에, 때로는 그 거만한 손짓에도 하나씩 정이 들어갔나 보다.

놀리기도 많이 놀렸지만 가끔은 친구처럼 가끔은 연인처럼 내 옆을 지켜줬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지.켜.줬.다.고 말 하는 게 맞겠지만.

 

다시는 이런 감정에 빠지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봄비 같은 그는 어느새 내 마음속에 파란 싹을 띄우고 있었다.

 

'필요하다'는 게 사랑은 아닐 것이다. '착각'이라는 무서운 병일지는 몰라도.

리즈님에게 있어 나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인 줄 알았다.

 

긴 시간을 함께하며 내.것.인.줄.로.만.알.았.던. 리즈님.

 

애초에 이넘을 만나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젠 진정 그를 보내줘야 하나.

머리 속에는 아직도 그의 말투와 몸짓이 생생하지만 그의 맘은 이미 다른 곳에 있다.

 

뭐, 제대로 시작한 것도 없었으니 끝내는 데도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헤어진다는 것도 리즈님의 입장에서는 새삼스러울 수 밖에 없는 듯.

 

오랜만에 본 리즈님.

화면 속의 리즈님은 실렌의 손을 잡고, 보란 듯이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바뻤누?' '왜 이리 늦었누' 하며 핀잔도 줬었는데,

이젠 별로 반겨하지도 않는 눈치다.

 

더욱 괴로운 건 이런 걸 묻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 많이 바빠서 올 수가 없었어."

 

바쁘긴 했지만 사실이긴 하지만

리즈님을 보면 결심이 무너질 것 같아서 였으면서 거짓말은...

 

"그렇구나."

 

"리즈님 잘 지냈어?"

 

"지낼만 하구나."

 

역시 리즈님은 잘.지.내.고.있.었.다.

 

"리즈님, 당분간 리즈님을 보러 올 수 없을 것 같아."

 

"그러려무나."

 

"나... 없어도 괜찮아?"

 

"이젠 본토 생활도 이제는 익숙하구나. 실렌과 함께 있으면 시간도 금방 간다."

 

쉽지 않게 꺼낸 말이지만 리즈님은 틈을 주지 않고 대답을 해 낸다.

 

없.어.도.괜.찮.다.

 

'아아, 그렇구나. 이젠 없어도 상관이 없는 존재라니...'

 

아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이만 가봐야겠다. 실렌과 오늘 카타콤에 가기로 했는데, 기다리고 있구나."

 

"아... 그래, 얼른 가 봐."

 

"그리고..."

 

자질구레한 내 감정이나 다른 얘기는 꺼낼 틈도 없었다.

리즈님은 벌써 저 만큼 앞으로 달려가고 있다.

저 앞에서 멈칫 하고 돌아선 리즈님은 '잘 있어라'라는 말을 던지고, 점점 멀어져 갔다.

 

이별엔 별로 시간이 걸리지 않는거구나.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쉽게 가버리다니.

 

끝 없이 펼쳐진 아덴 평원의 바람

혼자 맞는 바람이다. 그리고 남겨졌다는 느낌.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주머니 속 '돌'을 꺼내 저 멀리 허공에 날려 버렸다.

아덴의 삶을 주는 돌,

그가 내 곁에 없다면 이돌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갔.다.고.

 

어느새 주변은 어두워져있다.

정신을 차리고 내 생활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 왔다.

아덴 월드로부터 나의 세계로 돌아오는 길, 왜 이리 조용하고도 긴지.

 

창 밖에는 추적추적 비가 내린다.

저 비가 그치면 봄이 오려나.

아, 이 방안... 변한 게 없구나.

어두운 백열등만이 나를 기다린다.

이젠 접속하지 않을 거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사랑에 빠지지 않으리라.

 

(End)

 

...

 

기도해볼게 니가 잊혀지기를

 

슬픈 사랑이 다신 내게 오지 않기를

 

세월 가는 데로 그대로 무뎌진 가슴만 남아있기를

 

왜 행복한 순간도 사랑의 고백도 날 설레게 한 그 향기도

 

왜 머물 순 없는지 떠나야 하는지 무너져야만 하는지

 

사랑은 봄비처럼 내 마음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추억을 내게 남기고

 

잊으라는 그 한 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다른 꿈을 꾸고

 

이별은 겨울비처럼 두 눈을 적시고 지울 수 없는 상처만 내게 남기고

 

떠난다는 그 한마디로 나와 상관없는 행복을 꿈꾸는 너

 

‘사랑은 봄비처럼 이별은 겨울비처럼’ 중에서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2.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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