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전쟁을 잘 모른다. 게다가 전략 시뮬레이션을 풀어가는 능력도 형편 없다. 뭐, 그래서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 체스를 두다가 나의 취약함을 알아버렸다. 체스 책까지 사 보았지만, 그게 어디 글자를 보고 다 마스터하는 것이라면 누구인들 못하겠는가. 암튼, 잘 하지는 못했다.
매번 한 판씩 할때마다 배우는 것 없는 듯이 패만 늘어갔고 은근한 오기 같은 것이 발동하여 마침내 1승을 거둔 순간 체스를 접어버렸다. 조금은 비겁하지. 뭐, 그날 승은 소가 뒷걸음 치듯 한 것일 수는 있지만 그 상황에서의 판단과 실행은 대략 좋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상황을 다시 만들라고 하면 직접 만들 수 없다는게 흠이다. 4-5 수의 상황까지는 읽어낼 수 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략적인 면이 좀 부족하다는 거지.
베르베르의 '뇌' 같은 책을 보면서도 핵심의 전개와 관계없이 핀처의 체스 실력에 은근한 동경을 보내게 되거나 이창호를 보며 저 인간의 머리 구조는 여느 인간과 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는 뭔가가 있을 것 같다는.
암튼, 스스로 전략적인 사고가 부족한 것은 인식하고 있다.
이틀의 혈전의 보면서 느낀 것은 과연 그곳에 전략이나 전술 같은게 있냐는 것이다. 어제 역시 두번의 파티를 경험했다. 한번은 궁수팟, 한번은 단검팟. 소싱이라는 것 때문에 의외로 파티에 참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처음 팟은 주로 레인혈원들로 구성된 단검 파티였는데, 나름 대로의 지휘 체계가 느껴지는 파티였다. 물론 지휘하는 애가 형, 누나... 이렇게 하는 것이 보였지만, 치고 빠지는 작전을 비교적 깔끔하게 처리해 내고 있었다.
우리 파티는 주로 외곽 지역을 돌다 적혈을 만나면 잠시간의 기 싸움을 벌였다. 상대편의 파티 구성과 인원을 파악하고, 타겟을 정하고, 이 사이에 승산과 위험을 판단한 뒤, go 하는 거였다.
물론 이렇게 한 go는 거의 성공적이었고, 파원들의 피가 실낫같이 남아있는 시점에는 파콜을 이용하여 마을로 돌아올 수 있었다. 타이밍도 적절했고, 뒷치기도 아니었으며, 나름대로의 교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릴과 쾌감을 함께 맛볼 수 있다고 해야하나. 넘 거창해? 아님 말구.
이렇게 진행하다보니 일종의 패턴이란게 나타나고, 비교적 수월한 탐험과 재미를 함께 할 수 있었다. 물론 파티 원의 매너도 좋았다. 나같은 이질적인 파원도 쉽게 동화되게 만들었으니.
다음 파티는 드비안 혈의 궁수 파티. 이것도 가자마자 초대가 되긴 했는데, 엘더를 찾느라 20여분이나 대기를 해야했다. 역시 엘더 부족으로 팟 구성조차 하지 못하는 궁수들이 많이 있었다. 처음 파티의 여독이 남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머리 속에서는 하나하나 마다 비교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선 지휘 체계가 없었다. 딱히 파장의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고, 은근히 여기 저기서 말도 많은 것 같고, 가끔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밖으로 뱉고, 결정적으로 상황 판단도 안한채 달려들고, 1.4 제대로 않되고, 타겟 바뀌고, 파콜 타이밍까지 놓쳐 거의 팟 전멸 상태에 놓인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뭐, 그런 상황을 한번 격은 이후에도 이것은 바뀌지 않았다. 대부분 체계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위기를 거치고 나면 뭔가 바뀌기 마련인데, 여기에는 그런것이 없었다. 파원 모두가 파콜을 외치는 상황에서도 파콜은 되지않고.
결국 알하나는 저승길 노잣돈까지 받는 신세가 되었다. 그리고 비릿한 웃음까지. 사실 던지고 간 돈의 의미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또, 몇 번의 경험 끝에 우리가 눕게되는 것의 이유는 다름 아닌 우리 들에게 있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이건 비교적 처음부터 느낄 수 있는 것이었지만. 결국 더 이상의 회생 가능성을 느끼지 못하고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드비안이나 레인이나 내가 참여했던 파티의 그 순간이 그랬다는 것이지, 이 모습은 전체의 모습이 아닐 거라 생각한다. 오해들을 하지는 마시길.
나는 처음 말한대로 싸움을 잘 모른다. 그렇다고, 바보같이 혼자 나자빠지는 것이 전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래도 보이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누구의 말을 들어야하는지, 그리고 그 때의 자신이 해야할 것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다. 대략 실망한 것은 이것을 알고 모르고를 떠나 지긋이 무시하는 이가 많았다는 거지.
전쟁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그래도 뭔가를 할 때는 제대로 하고 싶다는 꿈을 꾼다. 현실의 내가 너무 많이 반영이 된 것인가. 집단 속의 개미같은 존재로 있기에는 내 자아가 넘 강한것이지. 게임은 게임답게 하겠다는 것이 조금은 무너졌는지도...
사실 나는 이 혈전에 무슨 명분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다만 PvP가 가능한 게임인 만큼 혈전을 경험해 보고 싶었던 면이 많이 있었거든. 물론 동맹전과 같이 어떤 지휘 체계가 일사분란하게 내려오고 이것을 따르는 것은 볼 기회가 없으므로 내 혈전에 대한 느낌은 지극히 편파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달랑 이틀만을 가지고 판단하고 싶지도 않다.
사실 나는 이 속에서도 뭔가 멋들어진 것을 찾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음, 이쯤되니 집요하게 뭔가를 찾는 내 자신이 바보스러워보이기도하고, 좀 지치기도 한다.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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