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황무지의 몹들은 리즈님에게는 조금 버거운 상대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남들이 별로 찾지 않는 이 곳이 상당히 맘에 든다. 게다가 경험치마저도.

리즈님도 조금 버거운 듯한 이곳을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다.

항상 뭔가 조금 더 위쪽을 바라보는 리즈님.

 

안킬로사우러스처럼 생긴 바실리스크는 움직일 때마다 거대한 진동을 만들었고, 흐릿한 모래바람은 황무지의 황망한 벌판으로 퍼져나갔다. 리즈님은 바실리스크가 무거운 몸을 뒤뚱뒤뚱 옮길 때마다 새로 연마한 불의 주문을 이용하여 그 놈의 덩치를 제압해 나아갔다.

 

저 피리리하게 마른 몸에서 어떻게 저런 기운을 만들어 내 뿜을 수 있는 것일까.

아주 드물게 주문을 실패하는 경우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바실리스크라면 아마 리즈님에게 만만한 상대가 아닐까 싶다. 명색이 핑크색 몹인데도 말이다.

 

몇 번의 집중 공격 때문인지, 리즈님이 거친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리즈님) 좀 쉬어야겠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보기에도 리즈님은 고도의 집중을 위해 거의 모든 기력을 소진하고 있었다.

 

휴.식.이.필.요.해.

 

리즈님이 쉴 동안 나도…….

 

잠시 자리를 일어나 얼음을 가득 채운 컵을 만들고, 책을 집어 들고, 리즈님에게로 갔다. 그런데, 이런! 화면 속 리즈님은 황폐한 황무지 바닥에 누워있는 게 아닌가. 리즈님은 황무지 해골 속사수에게 많은 화살을 맞고 이미 누워있었다.

 

“(나) 리즈님, ㅠ.ㅠ”

 

“(리즈님) 어디 갔었누?”

 

“(나) 물 한잔 마시고, 책 한 권 찾아오느라…….”

 

“(리즈님) 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더구나.”

 

“(나) -_-ㆀ ”

 

“(리즈님) 나는 다음 주문을 연구하련다. 어디 가려거든…… 내게 알려주고 가려무나.”


“(나) 리즈님, 미안해. 다음에는 꼭 말하고 갈게.”

 

리즈님은 화를 내지도 불평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자신의 옆을 지키라는 말 만을 했다.

‘네가 필요하다’란 말을 듣는 것은 역시 무리일까.

그 말 한 마디라면 아덴 왕국이 멸망하지 않는 한 평생을 옆에서 지킬 수도 있는데…….

 

'리즈님, 눕지 마.'

 

강한 공격력 이면에 있는 심히 약한 체력. 위저드란 이런 것인가.

낮은 읊조림과 포효하는 듯한 강력한 불길 공격.

 

애초에 이성이란 게 있었을 리 만무한 몹들의 미칠듯한 질주도 리즈님의 공격 두 번이면 스르르 자빠져 버린다. 그래도 가끔 주문에 실패하면 리즈님에게도 위기가 온다. 쉴 틈 없는 공격으로 인해 그 다음 주문들이 연속해서 깨지기 쉬웠다.

 

이럴 때는 리즈님과 나의 현란한 컨트롤 만이 위기를 극복하는 열쇠가 된다.

이럴 때는 정말 환상의 한 팀인데.

 

그래도 하루에 두, 세 번은 꼭 눕는 리즈님.

내가 리즈님을 너무 힘든 곳으로 인도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다.

찬 바닥에 누워있는 리즈님을 바라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평소의 거만하고 위용 있는 자세는 어디 갔는지 없고, 아이처럼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란.

 

리즈님이 누우면 덜컥 하는 건 ‘나’다.

 

리즈님은 툴툴 털고 있어나면 별 다른 내색을 하지 않고, 이내 한 번, 한 번의 공격을 위해 숨결을 가다듬고 정신을 집중한다.

 

아무리 봐도 저 넘의 귀족 넘은 내가 걱정을 사서 할 만한 인물은 아닌지도 모른다.

 

내 자신 걱정이나 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도.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고

사막의 고독한 싸움은 밤 늦도록 계속된다.

 

모래바람과 거친 몹들로 가득한 황막한 사막.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 뛰고 있는 걸까

말은 힘드네 어쩌네 하고 투덜거리고 있지만 정작 리즈님을 움직이는 것은 내 욕심 아닐까

멋진 위저드로 만들겠다는 내 욕심 때문에 리즈님을 혹사시키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건 그렇다치더라도 귀찮음이 하늘을 찌를 듯한 저 양반은 어째서 나와 함께 가고 있는 걸까

밤 늦게 아덴 월드를 찾아오는 이 사람이 안쓰러워서일까

단지 까탈스러운 자신의 비아냥거림까지 받아주기 때문에 편해서 그러는 걸까.

 

리즈님의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모든 것이 공허한 질문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머리를 싸 매고 있는 '나'는 리즈님에게 어떤 작은 의미라도 있는 것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저놈의 무관심에 마음 한 구석이 짠해진다.

 

Written by 헬리우스 알하나 2006.01.20. 09:54

 

 

반응형

'알하나 스토리(리니지2) > 리즈님 라이프' 카테고리의 다른 글

16. 음주르 라이프  (0) 2016.03.30
15. 유붕자원방래불역낙호  (0) 2016.03.30
13. 선물  (0) 2016.03.30
12. 위저드로 서다  (0) 2016.03.30
11. 말섬이여 안녕  (0) 2016.03.30